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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5월 19일] 1891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하다

김종현 | 기사입력 2010/05/19 [00:00]

<오늘의 역사> [5월 19일] 1891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하다

김종현 | 입력 : 2010/05/19 [00:00]
▲시베리아 철도 노선도 사진제공=위키피디어ⓒ

과거에는 피로, 21세기는 돈으로 물든 철도


1891년 5월 19일,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Транссибирская магистраль, Trans-Siberian Railway/TSR) 착공식이 열렸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시베리아의 개발과 동아시아로 영향력 확대를 목적으로 추진한 대사업이었다. 공사는 러시아의 동과 서에서 동시에 시작해서 1897년부터 부분 개통하기 시작해서 1916년에 완공했으며, 1929년부터 전철화 작업을 시작하여 2002년에 완료했다. 현재 시베리아 철도는 러시아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베리아 철도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피로 얼룩진 철도이기도 하다.

러시아 정부는 1887년에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처음에 노선은 처음에 제시되었던 남부(안)과 북부(안) 중에서 북부(안)을 선택했다. 당시 계획한 북부안은 즐라투스트(Zlatoust), 첼리야빈스크(Chelyabinsk), 옴스크(Omsk), 톰스크(Tomsk), 크라스노야르 스크(Krasnoyarsk), 니즈네우딘스크(Nizhneudinsk), 이르쿠츠크(Irkutsk), 그리고 블라디 보스톡이다. 북부안을 선정한 이유는 완만한 지형으로 주 노선 길이가 400km 단축되고, 시베리아 가도와 연계성, 인구밀집지역, 비옥한 토지 등을 고려해서다. TSR는 러시아를 전통경제에서 근대경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구 소련 정권은 시베리아 천연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노보시비르스크, 마가단 등 계획도시를 속속 건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우랄 지방과 함께 군수산업 위주로 공업화를 급속히 진행시켰다. 전쟁 후에도 쿠즈바스 탄전 등 대형 콤비나트를 건설하고, 1958년 ~ 1964년 추진한 7개년 경제계획을 완성하면서 시베리아는 구소련 경제의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그 중요성은 21세기 러시아에서 더 커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 경제가 호전되면서 시베리아 철도의 활용도도 늘어나고 있고, 전철화 사업 외에도 시베리아 철도 확장 사업도 열심히 추진하는 중이다.

러시아가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베리아 철도에서 파급된 경제성 때문이다. 중국의 유용한 광물 자원 가치를 달러로 환산할 경우 3조3000억 달러이지만, 러시아는 10조 달러에 달한다. 러시아 석유 자원 중 70%가 시베리아에 매장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베리아 자원 중에서 개발된 것은 고작 2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개발은 커녕 탐사도 제대로 못하여 실제 얼마나 더 많은 지하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시베리아에 매장된 지하 자원을 개발하고 이를 공장에 공급하기 위해서 시베리아 철도만큼 효율 좋은 운송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수숭로를 대신할 수 있는 수송수단이 될 가능성도 크다. 부산에서 선박으로 독일 함부르크까지 1TEU를 보낼 경우 기간은 한 달, 비용은 2300달러 정도지만, 알렉산드르 첼코 러시아 철도부 차관은 “국제 화물 정기운행열차(TSR)로 부산~함부르크 구간을 운송할 경우 기간은 10일, 비용은 889달러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점때문에 노무현 정권 당시 푸틴 대통령이 경의선과 연결하자는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경의선/경원선을 TSR과 연결할 경우 경제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이 철도망이 완성될 경우, 다렌 항이 쓸모없어져 동아시아 국제 물류에서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중국이 강력히 견제할뿐만 아니라, 경의선과 TSR을 연결하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북한 내부 사정 등으로 철도 연결 사업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제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미래를 내다봤는지는 모르겠으나, 러시아 알렉산더 3세가 다음 황제인 니콜라스 2세에게 철도 건설 중책을 맡기면서 부터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근현대 러시아 역사에서도 중요한 무대가 되어왔다.

러시아-일본 전쟁 중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부분 개통된 상태에서 여전히 공사 중이었던 지라 일본과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을 가졌던 러시아 육군은 제때에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극동 러시아 군을 지원할 수 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적백 내전 중에 오스트리아군 출신 포로들로 편성된 체코 군단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하여 멀리 돌아야 했고[각주:5], 백군이나 적군 모두 시베리아 철도를 중심으로 전쟁을 벌였다. 영화 《제독의 연인》 에서 주인공 알렉산드르 콜차크(Aleksandr Vasiliyevich Kolchak) 제독이 백군 활동을 하던 중에 타고다니던 열차가 바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다. 콜차크 제독은 TSR의 주요 정차역인 이르쿠츠크에서 볼세비키에게 총살당했다. 아버지의 명을 받아 철도 공사를 진행했던 니콜라스 2세도 자신이 건설한 시베리아 철도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예카테린부르크에 서 가족들과 함께 체카(Cheka) 에 총살당했다. TSR은 시베리아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을 수송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구 소련까지 죄수들을 악명높은 수용소 군도로 수송한 것이다. 독소전쟁 발발 직전에는 볼가-독일인들을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TSR은 우리와도 연관이 있다. 최근 여러 곳에서 TSR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1937년 스탈린이 일본의 첩자라면서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 17만여명을 중앙아시아(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로 강제이주시킬때도 TSR은 사용되었다.

피로 물들고, 수많은 양민들의 눈물이 서린 시베리아철도의 어두운 과거사도 가끔은 되돌아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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