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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성재 선생 숙환으로 타개: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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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성재 선생 숙환으로 타개

지난 2008년, 33년만에 무죄받기도

고은영 | 기사입력 2016/05/26 [19:57]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성재 선생 숙환으로 타개

지난 2008년, 33년만에 무죄받기도

고은영 | 입력 : 2016/05/26 [19:57]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피해자로 무기 징역형을 받고 1982년 형 감형조치로 석방된 후, 2008년 법원의 재심을 통해 33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던 이성재 선생이 지난 24() 10시 30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향년 92세로 유족으로는 아들 성일, 딸 혜성 혜원 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 삼육병원(구 위생병원) 장례식장 205호이고 발인은 27() 9시라고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밝혔다.
 
인권위는 26() 오후 7시, 서울삼육병원 영결식 행사장에서 '민족민주통일인사 고 이성재 선생 추모의 밤'행사를 가진다.

고인은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현재 고덕동.암사동)에서 한음 이덕형의 후손으로 태어나 구천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성중학과 중동중학교 재학중 민주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활동 중 종로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예과에 입학한 고인은 본과 인 정치학과에 다니면서
전국 건설 학생총연맹 부위원장과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에서 활동하다 정치학과 3년 재학중에 제적당했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 암살사건 관련자를 숨겨줬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한 고인은 60년대 혁신정당 활동을 하다 5.16 구데타 세력에 의해 반국가행위자로 구속돼 징역형을 받았다.


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터지자 성남에 피신하다 구속된 고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23월에 20년형으로 감형받았다가 형집행정지로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해 일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된 고인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이 시작되자 귀국해 2008년 33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은영 기자/koey5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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