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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으로 떠나는 벚꽃 나들이: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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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으로 떠나는 벚꽃 나들이

어깨 위로 연분홍 잎사귀... 벚꽃은 언제나 수줍다

문화부 | 기사입력 2017/04/13 [22:01]

남이섬으로 떠나는 벚꽃 나들이

어깨 위로 연분홍 잎사귀... 벚꽃은 언제나 수줍다

문화부 | 입력 : 2017/04/13 [22:01]


지천이 벚꽃이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듯 괜히 가슴이 일렁인다. 콧등 시리던 겨울의 기세가 한 풀 꺾이니 어느덧 봄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꽃잎이 살포시 고개를 들 것만 같다. 분홍. 분홍은 언제나 수줍다. 분홍이란 말이 마음에서 잔잔하게 번지자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분홍을 닮아있다. 가방에 옷가지를 챙길 때의 마음가짐. 미처 빨강이 되지 못한 분홍은 사방팔방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지난해 여름, 유난히 싱그러웠던 남이섬이 떠올랐다. 눈동자 가득 초록이 걸어 들어와 꽃 진자리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대신하던 숲 길. 어린 잎사귀를 달기 전, 가지 가득 분홍을 머금은 남이섬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해졌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남이섬은 올 때마다 매번 옷을 갈아입는 듯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우르르 내린 관광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었을 장군폭은 보란 듯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혼자 온 여행객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나루에 자리한 큰 나무는 두 가지 벌려 마중 나와 있었다. 중앙 잣나무 길을 따라 걸으니, 지난 여름 푸르렀던 잎사귀는 어느새 털갈이를 마친 강아지처럼 뽀송뽀송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언제나 푸를 것 같은 잣나무도, 풍선처럼 생긴 하얀색 등도 그대로였다. 하늘은 청명했다. 지난번에 보았던 청설모와 다람쥐는 봄이 온 게 신난 듯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연한 잎사귀를 골라 뜯어먹던 토끼는 발걸음 소리에 놀라 동산 뒤로 숨었다. 중앙 잣나무 길에서 동쪽으로 걷다보면, 강변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거대한 수양벚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인 벚꽃나무와 다르게 아래로 죽 늘어뜨린 가지 사이로 새하얀 벚꽃이 흩날려 장관을 이룬다.


섬의 중앙부에 다다르자 밥플렉스 건물 앞 벤치 마다 자리 잡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꿈만 같았다. 도심에선 느낄 수 없는 완벽한 여유. 문득, 분홍이었다. 그토록 찾았던 분홍이 온통 섬을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꽃비가 내리자 사람들은 제각각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깨위로 떨어진 벚꽃 잎은 연하디 연한 아기피부처럼 보드라웠다. 겨울에 꼭꼭 숨어있던 허브체험장은 문을 활짝 열고 봄의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여유를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목적이 있는 여행은 그 목적만을 좇다 여행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목적을 두지 않는 편이다. 여유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남이섬 중앙광장에서 호텔정관루 예약실까지 이어진 벗길 코스에서는 꽃비가 한창이었다. 소중한 사람과 꼭 함께 걸어야 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벗(友)길. 사이사이에 흩날리는 꽃잎은 사람들 간의 여백을 채워주는 듯했다. 어느 덧 소복이 쌓인 벚꽃 잎은 나무 그늘까지도 분홍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해가 지도록 꽃비를 맞으며 걸어 다녔다. 나는 그 틈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하늘도 분홍을 막을 순 없었다. 노란 불빛이 비추는 벚나무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바이크센터에서 빌린 자전거는 탁월했다. 정적인 남이섬을 걷는 것도 운치있지만 페달을 밟고 남이섬을 누비는 건 봄기운 가득한 남이섬에서의 가장 우월한 특권이다. 호텔정관루로 가는 길 양 옆에 든든하게 자리 잡은 벚나무는 야외수영장에 반사되는 물기를 머금어 촉촉했다. 벚나무길 벤치에 앉아 카메라를 꺼내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내 분홍이 내게 밀려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 책을 펼치자 꽃잎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샌가 책 틈새로 봄이 끼어든 것이다. 나는 살며시 꽃잎을 다시 책 속에 끼워 넣었다. 내년 봄엔 이 책을 들고 다시 남이섬으로 올 것이다. 책 사이에서 마르지 않고 생기를 내뿜을 이 벚꽃 잎과 함께.

(작은 소제목(▲)은 정현종 시인의 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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