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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3월 11일] 1954년, 소설 <자유부인> 논쟁: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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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3월 11일] 1954년, 소설 <자유부인> 논쟁

김종현 | 기사입력 2010/03/11 [00:09]

<오늘의 역사> [3월 11일] 1954년, 소설 <자유부인> 논쟁

김종현 | 입력 : 2010/03/11 [00:09]

1954년 3월 11일, 소설 《자유부인》의 작가 정비석이 "탈선적 시비를 박함"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황산덕 법대 교수의 3월 1일 자 비판을 정면 반박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 《자유부인》에 대한 논쟁의 시작이며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결코 끝나지 않을 시비의 시작이었다.

소설 《자유부인》은 정비석이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215회 동안 《서울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내용은 지금 시각으로 보면 그다지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대학교수의 부인인 오선영 여사가 대학생과 춤바람이 나고 탈선행각을 저지르다가 결국은 남편의 용서로 다시 집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남편인 대학 교수도 부인보다 훨씬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지다가 부인을 생각하여 참는다. 한 마디로 부부 모두가 서로 탈선했다가 화합한다는 지극히 삼강오륜 류의 윤리 교과서 같은 줄거리이다.

1954년 3월 1일, 황산덕 서울대 교수가 그해 3월 1일자 《대학신문》을 통해 ‘대학교수를 모욕했다’면서 비판의 글을 썼다. 황산덕 교수가 비판의 글을 쓴 것은 소설 속 타락한 주인공의 직업이 대학 교수와 부인이라는 점때문이었다.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신문사나 작가 집에는 내용이 부도덕하다며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당시 "지식인"들의 전화가 들끓었다고 한다. 황 교수의 글은 그런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작가 정비석은 황교수를 논박하는 반박글에서 "교수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있다며 반박했고, 황 교수는 다시 《서울신문》에 정비석 작가를 "문화의 적, 문학 파괴자,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적"이라고 몰아붙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이라, 통일의 기회를 날려버린 중공군에 비유하여 정비석에게 극악무도한 파괴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여기에 변호사 홍순업이 작가를 옹호하는 기고문을 《서울신문》에 투고하면서 논쟁은 격화되기도 했다. 논쟁은 이제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번졌다.

이런 비슷한 사건은 《자유부인》을 영화로 만들었때도 있었다. 당시 영화 검열을 담당한 문교부가 키스 장면과 포옹 장면을 문제 삼아 칼질한 것이다. 그냥 키스하는 장면과 포옹하는 장면이었다. 이 문제도 결국 검열에 대항하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귀결되어 원작에 이어 영화까지도 비슷한 주제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논쟁을 촉발하며 죽자 살자 싸웠던 황산덕 교수와 정비석 작가는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윌리엄 셔먼과 남군의 조셉 존스턴이 전쟁이 끝난 후 친구 사이가 된 적도 있는데, 피 흘리며 싸운 전쟁은 아니지만, 아뭏튼 이 두 사람도 친구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황교수는 논쟁이 있은 지 10년 후에 1964년에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비석씨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빨리 부패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1954년 정비석 논쟁 이후에도 2010년 현재까지 현재 진행형인 논쟁이다. 90년대 이후 굵직한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을 추려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 1992년, 당시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논란
    * 1995년 2월 9일, 연극 《미란다》가 음란하다며 검찰이 고소한 사건
    * 1996년 11월 2일, 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음란물로 규정하고 사법 처리 방침을 밝힘[각주:1]
    * 1997년 7월, 검찰, 《천국의 신화》 음란성 조사를 이유로 만화가 이현세를 소환
    * 2000년, 가수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 관련 백마부대와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들의 항의 및 내용 변경 압력 사건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 관련 논란
    * 2007년, 대선 UCC 관련 논란
    * 2008년, 미네르바 사건
    * 2009년, 손담비의 노래와 춤을 흉내낸 5살짜리 꼬마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 사건
    * 2010년, 선관위 트위터를 통한 선거 의견 개진 단속 방침을 발표.

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1990년 이후 대충 추린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에 관련된 논란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번째 단골 주제인 음란성 문제다. 포르노 왕국 미국에서도 항상 보수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은 음란성이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성 매매 내지는 음란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다. 지난 2월에 중국이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명분을 내세운 것도 음란물이다.

두번째는 특정 직업군 또는 집단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논리다. 대표 사례로는 가수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와 관련하여 백마부대가 부대마크를 지워달라고 했던 사건이 있지만 정비석의 《자유부인》도 지식인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부터도 공격받은 바 있다. 결국 단행본에는 공무원을 비하하는 발언은 삭제했다고 한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 방영 당시에도 국방부에서 수도방위사령부 부대 마크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5공 관련 인사들이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등 홍역을 치렀으며, 1999년에 《한겨레21》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의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루자 사무실까지 난입하여 기사에 항의를 한 적이 있다.[각주:2]

그리고 이런 2가지 형태에 숨어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정치 문제다. 2008년의 미네르바 사건이 가장 대표 사례라고 하겠지만, 인터넷의 발달 이후 매번 선거때마다 제기되는 선거법 관련 조항도 빼놓을 수 없다. 타인의 머리 속에서 나와 펜이나 키보드로 표현한 것을 특정 집단의 기준에 맞추어 자르고 감추거나 쓴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은, 결국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옥에 넣어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하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반복하게 될 수록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은 자기 검열을 하며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이 반복될 수록 사회의 건강성은 떨어지며, 사회가 발전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그따위 건강성은 잘 모르겠고, 내 주머니만 건강하면 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학교 폭력 문제에서 항상 학교 측이 "학교의 명예"를 내세우며 쉬쉬하는 것도 뭐가 더 중요한 지 판단력이란 게 없는 교장 자신이 나중에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각주:3]. 자기가 보고 싶은것만 보려고 했다가 망가진 사례는 많다. 1914년 탄넨베르크 전투 당시 러시아군 사령관 질린스키, 레넨캄프, 삼소노프 등은 자신들이 흐뭇해할 것들만 보다가 결국 15만명의 장교와 병사 중 12만여명을 사망, 포로, 부상으로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패장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삼소노프는 자살하고 질린스키와 레넨캄프는 모든 군적을 박탈당하고 불명예퇴역해야 했다.

물론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문제는 애매한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에서 헌법을 낳게 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이 절충점을 인류 보편타당성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경제 이익과 권력에 맞춰서 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에게 그렇게 정할 권리가 애시당초 없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2009년 8월 28일, 참여연대는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 에 이명박 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실태에 관한 서면의견서(written statement)를 제출했다. 그리고 9월 2일에는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및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situation of Human Rights Defenders)에게 5건의 인권침해 사례에 관한 진정서(Case Fact Sheet)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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