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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9월 13일] 1993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오슬로 평화 협정 체결: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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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9월 13일] 1993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오슬로 평화 협정 체결

김종현 | 기사입력 2008/09/13 [09:37]

<오늘의 역사> [9월 13일] 1993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오슬로 평화 협정 체결

김종현 | 입력 : 2008/09/13 [09:37]
1993년 9월 13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오슬로 평화 협정에 서명했다.이 협정은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 건설을 허용하는 대신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 당시. 왼쪽부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

1987년 이른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내에서 발생한 인티파타(intifada, 대봉기) 이후 하마스 등의 과격파가 성장하면서 아라파트 의장을 정점으로 한 기존 PLO는 점점 지도력을 잃어간다는 위기감에 봉착했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통치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기존 방식으로 국내 안정을 이룩하기 어렵다는 고민에 빠졌다. 또한 소련의 붕괴 이후 구 소련계 유태인이 대량 이주해와 이들을 정착시킬 정착촌 건설 문제에서 미국의 차관 지원이 절실히 필요로 했지만, 미국은 팔레스타인과 평화 정착을 조건으로 내걸며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었다. UN도 UN안보리 결의안 242, 338호에 의거하여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이런 국내외 정세에서 치러진 1992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영토와 평화의 교환’(land for peace)을 슬로건으로 대 팔레스타인 평화정책을 주창한 이츠학 라빈 당수의 노동당이 승리하여 집권하자 양측간에 평화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오슬로 평화 협정은 3단계로 이뤄졌다. 1단계는 예리코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이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를 수립하는 단계였다. 1996년 1월 말에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이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2단계에서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추가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라빈 총리가 1995년 말에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에 의해 암살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PLO와 이스라엘 모두를 적대시하는 이슬람 과격파 세력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여 2단계 시행이 주춤거리게 된다. 라빈 총리 암살 후 등장한 강경 우파 리쿠드 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협정 이행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계속 압력을 가하여 결국 2단계도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3단계 최종지위협상은 이행이 불투명하다. 양측은 팔레스타인 자치의 최종 성격, 동 예루살렘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점령지역내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 등 핵심 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양측간의 현격한 입장차이 때문에 협상 타결이 불가능했다. 특히 예루살렘에 위치한 성전산(Temple Mount, 아랍명: 하람 알-샤리프 Haram al-Sharif)의 주권 문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성지인 곳이어서 누가 그 주권을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2007년 7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최종지위협상이 결렬되자 9월에 2차 인티파타가 일어났고, 이스라엘은 베를린 장벽을 연상하는  거대한 벽으로 팔레스타인 지구를 봉쇄하는 등의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과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오슬로 평화 협정 체결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협정 체결 후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파에게 암살당하기도 했으며, 팔레스타인은 PLO와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에 반대하는 하마스 간에 벌어진 팔레스타인 내부 갈등을 겪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완전 독립 및 이스라엘 정착민 문제, 팔레스타인 강경파와 이스라엘군 사이에 벌어진 유혈 충돌 등으로 여전히 현지 정세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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