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3월 15일 시카코 쿡카운티 병원에서 최초의 혈액은행이 설치되었다. 혈액은행은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 조제, 보존하고 공급하는 기관이다. 항상 혈액을 안전하게 보관 및 공급하여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1921년의 어느 날, 런던 적십자사에 근무하던 퍼시 올리버는 출혈이 심한 환자에게 수혈을 시도했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사람중에 동일한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시도는 성공했다. 올리버는 이 일을 경험삼아 20명의 지원자들을 모아 혈액을 제공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조직은 1930년까지 2,500여명의 지원자를 갖췄고 매년 수 백명의 인명을 구했다. 이 체계는 혈액을 미리 채혈하여 보관하는 체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최초의 수혈 체계는 세계 각국의 모범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소련 등이 이 방식을 도입했다. 1930년에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수혈과 관련한 초점들은 수혈의 효능은 입증되었으니,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뽑아낸 피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옮겨졌다. 시체로부터 뽑아낸 혈액을 보존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뽑아낸 피도 보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소련 의사들은 미량의 구연산을 첨가하면 혈액 응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혈액 보존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소련에는 60개 이상의 혈액 보존 시설이 설립되었다. 혈액은 시트르산나트륨, 시트르산, 포도당으로 만든 ACD 보존액이 든 플라스틱 백에 무균 채혈하면 1∼6 ℃에서 21일간 보존할 수 있다. ACD 보존액이 아니라 인산염을 첨가한 CPD액도 사용하는데, CPD액에 아데닌이란 물질을 섞으면 보존 기간은 35일로 늘어나게 된다. 이 보존액을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글리세롤을 동해보호제로 사용하여 -80 ℃의 초저온에서 2년 또는 3년간 보존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후 군대 수혈부로 시작했고, 민간에서는 국립중앙혈액원이 1954년에 창설되었으며, 1958년 대한적십자사에 이관되었다. 현재 헌혈을 대한적십자자사가 맡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70년 혈액관리법이 공포되면서 매혈로 충당하던 혈액 수급을 헌혈 혈액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모든 혈액 수요를 헌혈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헌혈이 필요량에 비해 부족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피를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으며, 보존 및 공급 과정에서 사고도 발생하여 관리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대표 사례로, 지난 2005년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액이 환자에 수혈되어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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