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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2000일 동안 희망을 안았던 해고노동자 외면했다

해고노동자, "쌍용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0만 노동자에게 비수를 꽂았다"

고은영 | 기사입력 2014/11/15 [08:44]

대법원 판결, 2000일 동안 희망을 안았던 해고노동자 외면했다

해고노동자, "쌍용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0만 노동자에게 비수를 꽂았다"

고은영 | 입력 : 2014/11/15 [08:44]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재판을 방청했던 10여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할 말을 잃고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파기환송은 몰염치하고 정치적인 판결이다. 다시 법적으로 다투고 싸울 것이 남아 있다. 지난 6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며 "재판부는 쌍용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0만 노동자에게 비수를 꽂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도 "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어제 잠을 못 잤다. 정말 벼랑 끝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왔는데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대못을 박은 판결이다. 지난 6년 순간순간 질기고 모진 과정을 거쳤는데 또 다른 결단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쌍용차 현장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10년 전 2004년, 쌍용자동차는 중국 상하이차로 팔려갔다. 당시에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내고 투자는 안 했다고 해서 이른바 '먹튀' 논란이 있었다. 
2009년, 쌍용차는 경영이 악화됐다며 2,646명을 해고하겠다고 했고, 결국 명퇴 등을 거쳐서 마지막 남은 165명을 최종 정리해고 했다.


당시 해고자들은 "경영악화는 회사 측이 회계를 조작해서 만든 핑계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사측은 "해고는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 156명이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1심에선 해고가 적법하다고 봤지만 2심에선 해고 무효 판결이 나면서 해고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나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2심 결정을 뒤엎으며 이들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의 판결은 그야말로 냉탕과 온탕, 냉탕으로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해고 노동자 153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대량 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없고, 해고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며 해고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준 항소심 판결을 모두 뒤집었다.

대법원은 회사 측이 내세운 2009년 정리해고 당시, 경영상의 위기가 있었다는 점을 받아들였고 지난 2월 복직 판결을 받았던 해고자와 가족들은 법원 밖에서 위로하다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반면 대법원의 판결에
쌍용차 사측은 구조조정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이 입증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9개월 전, 항소심 재판부가 "쌍용차가 정리해고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유동성 위기를 넘어 구조적인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당시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경영상의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에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민변) 외 시민사회단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사측이 정리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항소심은 사측이 희망퇴직을 신청받는 등 해고회피를 위해 일정한 노력을 했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무급휴직 조치를 할 경우 정부에서 일정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무급휴직보다 정리해고를 우선적으로 시행했고, 희망퇴직 역시 본질적으로 근로자의 고용상실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나중에 시행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사측이 정리해고에 앞서 부분휴업, 임금 동결, 순환휴직, 사내협력업체 인원 축소, 회망퇴직 등의 조치를 한 점을 언급하며 "해고회피노력을 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무급휴직 조치는 노사간 극심한 대립으로 서로 공멸하는 최악을 상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며 "회사가 무급휴직을 우선적으로 시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4일, "유감"을 표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정애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어제 대법원은 2009년 쌍용차가 단행한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상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회피 노력'이 인정된다며, 지난 2월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던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며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다"고 밝혔다.

한 대변인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구체화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정리해고 사유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변도 이날 오후 " 파기환송심에서 새로운 심리를 통해 사실관계 변동이 있는 경우 다른 판단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며 "유동성 위기, 유형자산손상차손 및 재무건전성, 인력구조조정 규모 산정 관련한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된 사실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입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나아가 교대조 감축 문제 와 고용안정 협약 위반의 정리해고라는 점이 파기 환송심에서 다투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인고의 세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희망의 끈도 끊어지지 않았다"며 "우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희망을 안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
서민의 나라는 없다!", "법은 가진 자에게만 관대하고, 노동자에게는 엄격한겁니까?",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등 판결 결과에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다.

<고은영 기자/koey5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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