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밀알천사 산악대 토요산행:엔티엠뉴스
로고

밀알천사 산악대 토요산행

마음을 배낭에 담아, 천사들과 함께 오른 용산고 동문들의 산행 15년

황보영린 | 기사입력 2009/05/20 [11:38]

밀알천사 산악대 토요산행

마음을 배낭에 담아, 천사들과 함께 오른 용산고 동문들의 산행 15년

황보영린 | 입력 : 2009/05/20 [11:38]



동행취재
: 밀알천사 산악대 토요산행

마음을 배낭에 담아, 천사들과 함께 오른

용산고 동문들의 산행 15년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고 일부러 등산도 가는데, 그까짓 단체로 어울려 하는 주말산행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자폐아)의 짝궁(자원봉사자)이 되어 함께 하는 산행은 보통의 산행과는 좀 다릅니다.” 지난 9일 토요일 오후 2시, 5월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청계산 옛골로 내려오는 하행 길에서 묵묵히 산행을 하던 조남석(56세ㆍ용산고 24회ㆍ케이원건설 대표) 봉사자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동행하는 천사들은 예상치 않은 자세나 행동을 보이거나, 기분이 수시로 바뀌어 환경적 자극에 이상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다칠 수 있고, 줄행랑을 쳐서 산행은 고사하고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며 찾으러 다니는가 하면, 심지어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청계산의 명물이 되어 오가다 등산객을 만나면 격려의 미소도 보내주지만, 산행 초기에는 천사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산객들로부터

“왜 이런 아이들을 산에 데리고 왔냐?”라며 거친 항의와 욕설까지도 참아내야 하는 수모를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20~30명의 천사와 함께 산행을 하기 위해선 산행 내내 철저히 1대1의 멘토가 되어 같이 있어 주고, 묵묵히 놀아주며, 세심하게 지키면서 끝까지 배려하는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밀알천사 산행에 참가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늘 배낭 속에 사랑과 인내를 가득 담아 가야 합니다.“

올해로 밀알천사 토요산행에 6년째 참가하고 있다는 조남석 봉사자가 밀월천사 산악대에 합류하게 되었던 동기는 용산고등학교 1년 선배인 남기철 동문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 동기들의 진한 우정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부터이다.

 

현재 밀알천사 등반대장으로 활동하며 15년째 토요산행을 주도하는 남기철(57세ㆍ용산고 23회ㆍ무역업) 동문의 둘째 아들 범선(현재 28세) 군은 발달장애아(자폐아)이다. 남 대장은 범선이가 2살 때 그 사실을 발견하고, 슬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범선 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용산고 재학시절 유도부 주장을 지냈던 아빠의 체격을 물려받아서인지 몸집이 큰데다 자폐아 특성상 편식 및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1994년 7월초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있었던 동기동창 모임에 범선 군을 데리고 참석했던 남 대장은 범선 군의 건강 증진과 단체행동을 통한 사회성 함양과 아울러 하루 종일 아들인 범선 군을 보살펴야 하는 아내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을까 궁리하며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던 끝에, 산행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정용민, 최성문, 이준명, 김만승 등 용산고 23회 동기들이 흔쾌히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달 17일 제헌절 날,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범선 군을 데리고 하남 근처 검단산에 올랐다. 산길이 힘들어 울며 매달리는 당시 14세였던 범선 군을 친구들이 번갈아 맡아 달래가며 꿋꿋하게 산행을 계속했다. ‘오직 친구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 동기들은 바위가 많은 검단산보다는 범선 군의 안전을 고려해 흙산인 청계산으로 옮기고, 힘들어도 꼬박꼬박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자연을 무대 삼아 범선 군의 심신을 단련하여 자신감을 북돋우며, 산악인들을 통해 배우는 사회 소통의 접속자 역할을 해 나갔다. 그 사이 범선 군도 조금씩 산행에 적응해 가자, 용기를 내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범선 군의 친구 태웅이와 진수도 합류시켜 1대1 멘토 산행을 계속했다. 산행이 해를 거듭하고 의로운 동기들의 산행은 알음알음 입 소문으로 전해져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용산고 동기들은 10여 명으로 늘어나고 후배들까지 하나둘씩 봉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든든한 동기와 후배들의 후원에 힘입어, 용기를 얻은 남기철 대장은 동변상련의 심정으로 2000년부터 동행을 원하는 밀알학교(서울 일원동 소재 특수학교) 학생들을 천사로 산행에 합류시켰다. 짝궁 또한 밀알학교를 후원하는 남서울은혜교회 교인들이 기존의 용산고 동문들과 함께 봉사를 자청하면서 규모는 점점 커졌다. 이제는 용산고 동문(23~27회) 20여 명과 교인 등을 합쳐 40여 명의 자원봉사자인 짝궁과 천사 25명(대기천사 포함하면 40여 명) 등 총 40~6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인원, 날씨에 상관없이 청계산 원터골을 출발하여 오후 5시경 옛골로 내려오는 코스로 쉼표 없는 사랑나누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제 밀알산악대의 인기는 청계산 산행 길에서뿐만 아니라, 각계의 용산고 동문들에게 다양한 애정공세를 받고 있는데,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용산고 원주 동문회와 미륵산농원(전통된장, 고추장 생산)을 운영하는 동문 박종원(용산고 24회) 씨의 초청으로 함께 미륵산 산행을 한 후, 농원 안에서 작은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서울에서 용산고 동문들과 남서울은혜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밀알천사 가족 및 짝궁 90명과 용산고 원주 동문회에서 15명 정도가 자원봉사로 합세, 작은 오케스트라까지 모이니 총 120여 명의 인원이 함께 어우러져 시골의 산과 들을 아름다운 음악과 장엄한 사랑으로 수놓았다.

 

한편 청계산 밀알천사의 따뜻한 소식을 전해들은 용산고 동문 김상희(16회ㆍ학재수목농원 대표) 씨는 지난 9일 산행에 지친 천사와 짝궁들을 산행의 하산 길에 위치한 원골 자신의 집 앞마당으로 초대하였다. 시원한 음료수와 푸짐한 음식을 사랑의 접시에 담아 대접하며, 화려한 꽃과 싱그러운 수목 그리고 보드라운 바람이 순진한 천사들 주변에 머물며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제공하였다. 집 앞마당을 연중무휴 산행뒤풀이장소로 열어 놓겠다는 말과 함께...

 

15년 간의 산행 속에서, 아빠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배낭 안에 짊어지고 오는 사랑과 관심의 특효약을 듬뿍 받은 범선(28세)씨는 이제,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는 자폐장애우로 성장했다. 10년 전부터 등 뒤에서 음악선생님과 엄마가 음계를 누르고, 앞에선 범선 씨가 입을 대어 한 음절 한 음절씩 불며 배운 색소폰 실력이 이젠 어느 정도 연주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러, 송년모임, 교회성가대에서는 물론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의 객원연주자 자격으로 외국의 초청연주까지 소화하고 병원과 복지재단 등을 다니며, 병상의 환자, 그리고 위로와 평안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단독공연까지도 하고 있다.

 

 

용산고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푼 온정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온 결과, 남기철 대장은 아들과 손을 잡고 청계천과 명동을 산책하고 산과 들을 함께 여행하며 색소폰의 감미로운 선율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지만, 지금의 감사함을 어느 날 일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2008년 10월 31일

범선이는 미국에서 7번의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중 2번은 아주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도 울고

참석한 여러분들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3번은 보통 수준이라고 하고요

나머지 2번, L.A. 공연은 엉망이라고 하더군요.

엉망일 때도 엄마는 속상해서 울었다고 합니다.

기쁠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눈물 속에 삽니다.

10일간의 긴 여행 속에서 시차와 싸우면서도

7번의 연주를 해낸 범선이와 그 멤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범선이가 2번 잘하고 3번은 보통이고 2번은 못했으면

평균 수준은 넘는 거라고 자위해 봅니다.

 

취재 : 한국승(31회 동문)

  • 도배방지 이미지

플러스 많이 본 기사